
옛부터 금강산을 봉래산, 지리산을 방장산(⽅丈⼭), 한라산을 영주산 이라 하여 금강산, 지리산, 한라산을 삼신산(三神⼭)이라
불렀습니다.
쌍계사는 삼신산의 하나인 방장산이라 부르는 지리산 남쪽 기슭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 쌍계총림 쌍계사 입니다.
쌍계사에는 국사암, 불일암, 도원암, 덕봉암, 응봉암 등 산내암자가 있고, 그 외에도 성불하기 전에는 나오지 말고 차라리 죽어서 나오라는 상사관원과 하사관원이 있으며 청학동에는 불일산방이 있습니다.
문화유산으로는 국보 1건, 보물 13건 392점(경판 3종 368매 포함), 시·도지정 유형문화유산 12건 1389점(경판 30종 1375매), 문화유산자료 5건, 국가지정 명승 ‘지리산 쌍계사와 불일폭포일원’이 있고, 경상남도 자연유산인 쌍계사차나무 시배지가 있습니다

쌍계석문
호리병속의 별천지 시작
쌍계사의 옛길 입구에 큰 바위 두 개가 석문처럼 우뚝 서 있습니다.
이 마을을 석문마을 즉 사하촌(寺下村)이라고 하는데, 우리가 보는 방향에서 좌측에는 ‘雙磎’ 우측에는 ‘⽯⾨’ 이라는 글자가 각각
쓰여 있습니다.
고운 최치원 선생이 쌍계사를 지나 청학동으로 가면서 지팡이로 쓴 것이라 합니다.

국가지정문화유산 | 보물
하동 쌍계사 일주문(河東 雙磎寺 ⼀柱⾨)
일주문은 속세를 떠나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서는 첫 관문으로, 한결같은 마음으로 정신을 수양하고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쌍계사 일주문은 1641(인조 19)년에 벽암 화상이 지었다고 하며, 1977년에 고산 화상이 손질하여 고쳤습니다.
일주문으로서는 드물게 지붕 옆면이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을 올렸습니다. 건물 높이에 비해 지붕이 넓지만 추녀 밑에 받침 기둥을 세우지 않고, 기둥의 앞뒤에 보조 기둥을 세워 지붕을 안전하게 받치고 있습니다. 처마는 2단으로 있는 겹처마이며,
처마를 받치는 기둥머리 장식이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형식이어서 화려합니다.
또 기둥머리 장식 부재가 가늘고 섬세한 점 등 장식성이 강한 것으로 보아 조선 시대의 양식보다는 근대적 건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도지정문화유산 | 경상남도유형문화유산
하동 쌍계사 금강문 (河東 雙磎寺 ⾦剛⾨)
금강문은 일주문을 지나 두 번째로 나오는 문입니다. 불법을 수호하고 악을 물리치는 금강력사가 모셔져 있는 문으로, 쌍계사 금강문은 840(문성왕 2)년에 진감 선사가 창건 당시에 처음 지었습니다. 1641(인조 19)년에 벽암 화상이 고쳤으며, 문 앞에는 벽암이 쓴 현판이 있습니다. 지금의 건물은 1979년에 고산 화상이 손질하여 고친 것입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자 모양인 맞배지붕입니다. 기둥이 높고 기둥의 장식들은 단순합니다. 처마는 2단으로 있는 겹처마이며, 지붕의 양옆에는 비바람을 막는 풍판을 달았습니다. 건물 가운데 칸을 열어 지나다닐 수 있게 했으며, 양옆 칸의 바닥에는 지면에서 약 45㎝가량을 높여서 마루를 깔았습니다.
왼쪽에는 부처님을 보호하며 비밀스러운 내용을 들으려 하였다는 밀적금강이 있고, 오른쪽에는 엄청난 힘을 가졌다는 나라연금강이 있습니다.

시·도지정문화유산 | 경상남도유형문화유산
하동 쌍계사 천왕문 (河東 雙磎寺 天王⾨)
천왕문은 절에 들어설 때 일주문과 금강문 다음으로 지나게 되는 세 번째 문으로, 사천왕을 모신 문입니다. 사천왕은 부처님께 귀의(믿고 따름)하여 불법을 수호하고, 수도승과 불자를 돕는 4명의 수호신입니다. 불교에서 세계의 중심에 있다고 여기는 수미산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지국천왕(持國天王), 남쪽에는 증장천왕(增⾧天王), 서쪽에는 광목천왕(廣⽬天王), 북쪽에는 다문천왕(多聞天王)이 있습니다. 쌍계사 천왕문은 1740(숙종 30)년에 백봉 화상이 지었고, 1825(순조 25)년에 고쳐 지었으며, 1978년에 고산 화상이 다시 고쳐 지었습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자 모양인 맞배지붕입니다.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에 짜 맞춘 공포를 단순하게 만들어 소박하고 단아한 느낌이 듭니다.
천왕문 안에 모셔 둔 사천왕상은 나무로 조각되었는데, 조각 솜씨가 뛰어납니다.

하동 쌍계사 구층석탑(河東 雙磎寺 九層⽯塔)
이 탑은 고산 화상께서 인도성지 순례를 마치고 돌아올 때 스리랑카에서 직접 모셔온 석가모니 부처님 진신사리 3과, 산내 국사암
후불탱화에서 출현한 부처님의 진신사리 2과 그리고 전단나무불상 일존을 모신 것입니다.
발심 서원한 백창기 김반야성 부부의 단독 시주로 불기 2531년(서기 1990년) 3월 15일에 완공했습니다.

시·도지정문화유산 | 경상남도문화유산자료
쌍계사 팔영루(雙磎寺 ⼋詠樓)
팔영루는 진감선사가 섬진강에서 뛰노는 물고기를 보고 8음률로 ‘범패(梵唄) 또는 어산(⿂⼭)’이라는 불교 음악(우리 국악의 시초
이기도 함)을 작곡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진감선사가 840(문성왕 2)년에 쌍계사 창건 당시 팔영루를 세웠고, 그 뒤 조선 1509(중종 4)년에 중섬선사가 고쳐 짓고, 문신 어득강에게 글을 부탁하니, 어득강이 서문과 팔영을 찬양하는 8수의 한시를 지었다고 합니다. 이후 1641(인조 19)년에 벽암 화상이 쌍계사를 다시 지을 때 대웅전과 함께 팔영루를 고쳐지었고, 1979년에 고산
화상이 새로 손질하여 고쳤습니다. 정면 5칸, 측면 3칸 크기인 2층 건물이며,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자 모양인 맞배지붕입니다.
부처님이나 보살님을 모시지 않은 곳이어서 처마를 받치는 기둥머리 장식이 없지만, 처마는 2단인 겹처마로 만들었고 단청도 화려합니다.
팔영루는 범패의 명인을 교육했던 뜻깊은 곳입니다.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河東 雙磎寺 眞鑑禪師塔碑)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는 신라 말의 명승 진감선사 혜소(慧昭)의 덕을 기려 세운 탑비로, 887(진성여왕 1)년에 세워졌습니다.
선사의 속성은 최 씨로, 804(애장왕 5)년에 당나라로 가서 신감대사 밑에서 승려가 되었고, 830(흥덕왕 5)년에 중국 선종의 법맥을 잇고 신라로 돌아와 당시 왕들의 우러름을 받다가 77세의 나이로 지금의 쌍계사인 옥천사에서 입적했습니다.
헌강왕(885)은 혜소에게 진감선사라는 시호를 내리고 진감선사대공령탑이라는 탑호를 내려 탑비를 세우도록 했습니다.
이 비석의 글은 왕명으로 최치원이 짓고 쓴 사산비명(四⼭碑銘) 가운데 하나로, 당대의 문장 연구와 불교사 연구에 중요한 참고
자료로서 가치가 높습니다.
전체 높이는 363㎝, 비석 몸체의 높이는 213㎝, 너비는 약 100cm, 두께는 22.5㎝입니다.

하동 쌍계사 적묵당(河東 雙磎寺 寂默堂)
적묵당은 ‘말없이 공부하는 곳’이라는 뜻으로, 쌍계사에 출가한 이들이 공부하는 곳입니다. 진감선사가 840(문성왕 2)년에 대웅전과 함께 처음 지었으며,
이후 1641년에 다시 증축한 것을 1978년에 고산 화상이 다시 증축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건물은 정면 6칸, 측면 3칸 크기
이며,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자 모양인 맞배지붕입니다.




국가지정문화유산 | 보물
하동 쌍계사 대웅전(河東 雙磎寺 ⼤雄殿)
쌍계사 대웅전은 진감선사가 840(문성왕 2)년 창건 당시에 세운 건물인데 임진왜란(1992-1598) 때 불탔던 것을 1632(인조 10)년 이후 여러 차례 고쳐 지으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쌍계사의 중심 건물인 대웅전에는 삼존불과 사보살을 모셨습니다.
우리가 부처님을 마주하고 서있는 정중앙에 석가모니불을, 우측에는 약사여래불을, 좌측에는 아미타불 등 삼존불을 모셨고,
석가모니불 좌우에 보현보살과 문수보살을, 약사여래불 우측에 일광보살을 그리고 아미타불 좌측에는 관세음보살 등 사보살을
모셨습니다. 이렇게 삼존불 사보살을 모신 단을 상단이라 하고, 좌측으로는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과 제자들을 수호한다는
화엄신장을 모신 단을 중단 또는 신중단이라 하고, 맨 왼쪽에 영가(돌아가신분)를 모신 단을 하단 또는 영단이라고 합니다.
쌍계사 대웅전의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3칸입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팔(⼋) 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며, 기둥이 높아
전체적으로 건물의 규모가 크게 느껴집니다. 건물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꾸몄고, 불단 위로는 지붕 모양의 닫집을 화려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조선 시대 불교 건축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어 우리나라 건축사와 미술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시·도지정문화유산 | 경상남도유형문화유산
하동 쌍계사 나한전(河東 雙磎寺 羅漢殿)
나한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인 오백 명의 나한 중에서 열여섯 명인 십육 나한을 모신 전각입니다. 나한은 인간 세계의 온갖
번뇌를 끊고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 부처님의 경지에 이른 자를 말합니다. 쌍계사 나한전의 십육 나한상은 석가모니부처님을
중심으로 양쪽 옆으로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전각은 840(문성왕 2)년에 진감 선사가 쌍계사 창건 당시에 처음 세웠으며,
1641(인조 19)년에 벽암 화상이 고쳐지었다고 전해집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이 ‘⼈’자 형 맞배지붕
입니다. 건물의 크기가 작고 장식도 없어 전체적으로 소박한 느낌이 듭니다. 건물 아래를 받치는 기단을 높게 쌓아 주변의 대웅전,
명부전과 균형을 맞췄습니다.

삼성각
삼성각은 정중앙에 칠성을, 좌측에 독성을 그리고 우측에는 산신 등 세분을 모신 전각입니다.
칠성은 민간의 칠성신앙이 불교와 관계를 맺은 것으로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신앙입니다. 칠성을 삼신의 중앙에 모시고 있다는 것은 칠성신앙의 중요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불교문헌에 전하는〈북두칠성염송의궤 北⽃七星念誦儀軌〉·〈북두칠성연명경 北⽃七星延命經〉등은 칠성신앙이 불교·도교와 깊은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칠월칠석(음력7월7일)은 천상과 지상이 만나는 날입니다. 천상은 부처님 세계요 지상은 우리중생의 세계입니다. 즉 부처님과 중생이 만나는 날입니다.
옛부터 우리 조상들은 칠월칠석날에 가족들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국수공양을 하는 날입니다. 무병장수를 기원하고 사랑하고 존경하는 분들께 편지 쓰는 날 이기도 합니다.
산신은 산신령이라고도 합니다. 산신은 농경민에게 물이나 비를 내리는 강우신이나 풍산신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인간에게는
아이를 가져다주는 신이자 그 생명을 악귀들로부터 보호하는 수호신이기도 합니다. 산신의 신체는 호상과 신선상이며, 산신에게
제사하는 일을 ‘산제’, ‘산신제’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산신제를 지냈으며 지금까지도 그 풍습이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예부터 금강산을 봉래산(蓬萊⼭), 한라산을 영주산(瀛洲⼭), 지리산을 방장산(⽅丈⼭)이라고 합니다.
진시황과 한무제가 불로장생의 명약을 구하기 위하여 이 곳으로 동남동녀 수천 명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리산 남단에 있는 이 산을 삼신산 이라 부르고, 쌍계사를 삼신산 쌍계사라 부릅니다. 삼신을 모시고 있는 유서 깊은 도량에 산신기도를 봉행하려는 이들이 물밀 듯이 운집하기도 하는데, 봄과 가을 일 년에 두 번 봉행하는 산신기도에 동참하여 만복이
운집하고 무병장수하기를 축원기도 올립니다.
〈봄〉음력 3월 4일~6일까지.
〈가을〉음력 9월 14일~16일
독성은 독성수(獨聖修) 또는 독성존자(獨聖尊者)라고도 합니다. 독성은 홀로 인연의 이치를 깨달아서 도를 이룬 소승불교의 성자들에 대한 통칭으로 사용되었으나, 나반존자가 ‘홀로 깨친 이’라는 뜻에서 독성 또는 독성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사찰에서는 독성기도를 많이 올리고 있는데, 이는 나반존자의 영험이 매우 커서 공양을 올리고 기도하면 속히 영험을 얻게 된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화엄전
화엄전은 경판을 봉안한 전각으로 쌍계사 목판 대장경을 봉안했습니다.
쌍계사에는 1603년에 제작된 보물 선원제전집도서 22판, 1604년에 제작된 원돈성불론, 간화결의론 11판, 1611년에 제작된 대방
광원각수다라요의경 335판 등 총 368판 국가지정 문화재가 있고, 지방문화재로는 30종 1,375판이 있습니다. 전체 수량은 불경과 불교 관련 서적 등 총 33종 1,743판입니다. 쌍계사는 해인사 다음으로 많은 경판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 대장경판은 주로 1603년에서 1903년 사이에 여러 차례 제작된 것입니다. 쌍계사의 말사인 능인암에서 제작하여 쌍계사로 옮겨온 것과 쌍계사 본사와 국사암, 칠불암 등에서 제작한 것이 있습니다. 능인암 판은 대부분 1603년~1604년에, 국사암 판은 1903년에 제작 되었으며, 그 나머지는 17세기와 18세기에 간행됐습니다. 쌍계사 화엄전에 봉안된 목판대장경은 쌍계사의 오랜 역사와 함께 하여 400여년에 걸친 목판대장경의 변천사를 보여줍니다.
한편, 국보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河東 雙磎寺 眞鑑禪師塔碑)가 일부 훼손되어 있지만, 조선조 영조 2년(1726) ‘유당신라국지리산쌍계사교시진감선사비명병음각(有唐新羅國智異⼭雙磎寺敎諡眞鑑禪師碑銘幷陰刻)’의 목판이 있으므로 그 내용을 온전히 파악할 수 있습니다. 쌍계사 목판대장경은 각 시기에 읽힌 불경의 종류와 당대를 살았던 고승의 자취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 불교 문화유산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합니다.

금강계단(⾦剛戒壇)
엎드려 들으니 선사 대은율사께서 칠불암에서 7일간 용맹기도 중에 서상수계 하시고 전수계맥 하되 계단을 정하지 않으시니 산승이 1988년 무진년 음력 7월 17일에 쌍계사 대웅전에서 7일간 용맹기도를 시작하여 제5일인 7월 21일 오후 기도 중에 석가모니불과 문수보살, 미륵보살이 오색구름 위에서 나투시고, 삼존불 아래 허공 중에 금자사구가 나타나니
심직명지계 심곡명훼범 ⼼直名持戒 ⼼曲名毁犯
직심근수행 이리구원성 直⼼勤修⾏ 理利俱圓成
하리라는 서상계를 받고는 불은에 보답코져 국내, 국외의 크고 작은 사암을 가리지 않고 보살계 전계전법에 전념하여 쉬지 않았으며 또한 대은율사서상계맥을 국내외 승속불자가 전수 받지 않음이 없으나 근본계단이 없음을 통탄히 여기고, 나 또한 서상수계하였으나 근본계단이 없는 연고로 2007년 정해년에 불현듯 뜻을 내어 바로 대시주자를 만나 대은고산율맥계단을 원만조성하여 부처님 혜명이 영원히 끊어지지 않게 하니 유정들도 무정들도 모두 정계를 받고 번뇌를 여의고 보리를 이루어서 널리 중생을 제도하며 사바세계가 극락으로 바뀌어지고, 이것을 보고 듣는 이는 부처를 이루어서 중생계가 다하도록 모두 다 상락아정을 즐길지어다.
– 쌍계사 조실 고산스님 금강계단조성기문



시·도지정문화유산 | 경상남도유형문화유산
하동 쌍계사 명부전(河東 雙磎寺 溟府殿)
명부전은 지옥의 중생을 구제하는 지장보살과 명부(사람이 죽은 뒤 영혼이 가는 세계)의 10대 제왕인 시왕을 모신 전각입니다. 죽은 자가 생전에 지은 업보를 심판하여 그의 영혼이 가야 할 길을 정합니다. 이 건물은 1687(숙종 13)년에 성안 화상이 처음 지었고, 숙종 36년에 신민 화상이 보수했습니다.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2칸 크기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자 모양인 맞배지붕을 올렸습니다. 기둥머리 장식이 간략하여 소박한 느낌이 듭니다. 건물 아래를 받치는 기단을 1단으로 낮게 쌓았는데, 중심 건물인 대웅전보다 낮게 지으려 한 듯합니다. 기둥머리의 장식물이 비교적 작고 연꽃무늬를 섬세하게 조각한 점 등은 조선 후기의 기법으로 보입니다.

시·도지정문화유산 | 경상남도문화유산자료
하동 쌍계사 마애불(河東 雙磎寺 磨崖佛)
마애불은 암벽에 새긴 불상을 일컫는 말로, 쌍계사 마애여래좌상은 고려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큰 바위에 불상을 두꺼운 돋을새김으로 새기고 불상 둘레를 깊이 파내어, 불상을 작은방에 모셔 둔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머리가 크고 얼굴에 살집이 많으며 귀가 어깨까지 처진 모습이 자비로워 보입니다.
손은 옷으로 덮여 있으며, 전체적인 모습이 아주 소박하여 부처님이라기보다는 스님처럼 보이는 특이한 약사여래불입니다.

시·도지정문화유산 | 경상남도문화유산자료
하동 쌍계사 설선당(河東 雙磎寺 說禪堂)
하동 쌍계사 설선당은 학인 스님들의 교육 장소로 불경을 공부하는 곳입니다. 진감선사가 840(문성왕 2)년에 대웅전과 함께 설선당을 처음 지었으며, 이후 1641년과 1801년에 고쳐 지은 것을 1975년에 고산 화상이 다시 손질하고 고쳐지었습니다. 건물은 정면 7칸, 측면 3칸 크기이며, 지붕은 옆면이 사람인(⼈)자 모양인 맞배지붕입니다.
쌍계사 설선당은 산중 대중이 모여서 강의를 듣고, 발우공양(스님들이 예법에 따라 식사하며 수행하는 일)하는 곳으로 사용합니다.

범종루

시·도지정문화유산 | 경상남도문화유산자료
하동 쌍계사 청학루(河東 雙磎寺 靑鶴褸)
이 건물은 진감선사가 창건 당시에 지은 건물로, 1930년 쌍계사 주지 손민선사가 중수한 맞배지붕의 2층 누각이며, 1985년 지붕 기와를 한 차례 보수했습니다. 초심자初⼼者 스님들의 수행 장소로 사용된 곳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백곡도인⽩⾕道⼈의 청학루 수행기문이 있습니다. 또한 1902년 8월 면암 최익현(崔益鉉)이 남쪽을 여행할 때 이 지방의 사림 32명과 주지 1명과 함께 창수시(唱酬詩)를 짓고 음사(吟社)를 창립하여 청학루음사(⾭鶴樓吟社)라 하였는데, 그 현판이 청학루에 게시되어 있습니다.

시·도지정문화유산 | 경상남도유형문화유산
하동 쌍계사 팔상전(河東 雙磎寺 八相殿)
팔상전은 석가모니부처님의 일대기를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그린 팔상도(회화)나 조각상을 모시는 전각입니다. 쌍계사 팔상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크기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 지붕의 건물입니다.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다포계 건물로, 기둥 위에서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형식으로 지어졌습니다. 기둥이 높고 기둥 사이의 간격이 넓어 대웅전과 같은 웅장함이 느껴집니다. 건물 안의 기둥머리에는 장식이 많은데, 그 장식들을 안쪽으로 피어오르는 것처럼 만들어 공간이 웅장하고 화려해 보입니다. 또한, 천장은 격자 모양으로 짜 맞춘 우물정(井)자 천장이며, 가운데로 갈수록 점차 올라가는 층단을 두어 시야가 트이게 했습니다. 불상을 모셔 둔 불단 뒤에는 영산회상도와 팔상도가 모셔져 있습니다. 이 전각은 1290(충렬왕 16)년에 진정국사가 처음 세우고 나서 여러 차례 손질하고 고쳤는데, 지금의 건물은 1978년에 고산 화상이 고친 것입니다.

쌍계사 영모전(雙磎寺 永慕殿)
영모전은 쌍계사 창건주인 진감선사 진영(동치 2년, 1863)을 비롯하여 쌍계사 역대조사님의 진영을 모신 전각으로, 중앙세분은 진감·남악·벽송선사님의 진영이고, 왼쪽 5분은 등계·서산·사명·소요·호연선사님 진영이며, 오른쪽 5분은 부용·부휴·벽암·백암·응암선사입니다. 또 왼쪽벽면에 모신진영은 월조선사 그리고 오른쪽벽면에 모신 진영은 고산선사(2023)진영입니다. 641(인조 19)년에 벽암이 고쳐지었고, 1978년 고산 화상이 새로 고쳐 지어 현재에 이르고 있습니다.
영모전은 불교의 진리와 중생에게 생명의 감로수를 내린 여러 큰스님의 뜻을 길이 숭모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입니다. 단층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포작을 짜지 않은 간결한 도리집으로 정면에는 모두 2분합의 세살문을 달았습니다.

시·도지정문화유산 | 경상남도유형문화유산
하동 쌍계사 육조정상탑전(河東 雙磎寺 六祖頂相塔殿)
국가유산청에는 하동 쌍계사 육조정상탑전으로 등록되어 있으나, 사찰에서는 금당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하동 쌍계사 육조정상탑전은 쌍계사의 개산(처음으로 산문을 연 것)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삼법과 대비 두 화상이 723(성덕왕 22)년에 중국 불교 선종의 제6대조인 혜능 조사의 정상(頭上:두상)을 모시고 와서, “설리갈화처(雪裏葛花處, 눈 속에 칡꽃이 핀 곳)에 봉안하라”는 불보살의 계시를 받고 호랑이의 인도로 이곳을 찾아와 정상을 봉안하고 산문을 연 데서 유래했습니다. 그 후 840(문성왕 2)년에 진감선사가 쌍계사 창건 당시에 건물을 짓고 육조영당이라 했습니다. 건물 안에 있는 육조정상탑은 7층으로 용담 선사가 세웠다고도 하며, 주변 목압사 터에서 옮겨 왔다고도 합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입니다. 건물을 받치는 기단 없이 툇마루를 두어 지면과 떨어뜨린 것이 특징입니다. 기둥 위에서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형식으로 지어졌습니다. 기둥 간격이 매우 좁고 높이가 낮아 건물이 작은 데 비해, 기둥머리의 장식이 많고 커서 화려하고 장중해 보입니다. 천장은 낮지만 건물 안의 기둥 장식들을 중앙으로 피어오르는 것처럼 만들었고, 탑의 위쪽에는 작은 집 모양의 닫집을 만들어 장엄한 느낌을 줍니다.
건물의 앞쪽에는 조선 후기 명필인 추사 김정희가 쓴 현판이 걸려있으며, 지금의 건물은 고산 화상이 1979년에 고쳐 지은 것입니다. 쌍계사 건물 가운데 균형미가 가장 돋보입니다.


성보전
원래 쌍계사 중창주 고산대선사님께서 현재 종무소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을 성보박물관으로 사용하기 위해 지었습니다. 하지만 공간이 협소해 보다 효과적인 유물의 보존과 전시를 하는 데는 부족하다 여겨 2001년 정부보조금과 신도성금으로 지하 1층, 지상 2층의 ‘성보전(聖寶殿)’을 새로이 건립했습니다.
성보전에는 본사의 유물을 비롯하여 각 말사의 귀중한 성보들이 소장·전시되어 있는데, 1층에는 일반 유물을 전시했고 2층에는 불화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성보전에는 보물에 지정된 영산회상도, 삼세불탱, 팔상탱, 감로탱, 괘불, 관음보살도와 삼장보살도, 신중탱 등 다수의 경상남도유형문화유산을 전시하고 있어서 우리나라 불교회화컬렉션으로는 단연 돋보인다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들차를 행했던 곳이 경주 창림사인데, 창림사지에서 출토된 다연원(茶淵院) 와편 등 신라중요 와편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석가모니 대불
문화예술관은 두 계곡중 하나인 계곡 건너편에 대불과 함께 건립되어 수행과 신행 그리고 현대포교의 공간으로 사용하는 곳입니다.
예술관에서는 템플스테이를 비롯하여 다양한 불교 역사·문화 관련 연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부도전
스님들의 사리나 유골을 봉안한 부도가 모여 있는 곳을 부도전이라 합니다.
쌍계사 부도전은 멀리 백운산이 보이는 쌍계 팔경중의 하나인 응봉아래에 있습니다.
부도전에는 쌍계총림 초대방장이자 중창주이신 고산대선사님의 부도 ‘불식촌음’과 쌍계사의 선대조사님인 벽송당 지엄, 허한당 외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부도 1기 등 총4기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선대조사님의 부도들은 본래자리에서 이곳으로 이안(移安) 했습니다.
고산대선사 헌사
밑 없는 돌배(⽯⾈) 타고 다 건너셨네
고산(⼭)대선사(⼤禪師) 기침소리에 옷깃을 여미며
1933년 캄캄한 식민지의 땅 경남 울주에서 몸 받으시고
일찍 여윈 어머니 찾아 동산스님 깊은 산에 들어와
그리운 이름 목놓아 부르다가 그 사무치는 떨림 끝자락에서
어머님 대신 부처님을 찾아내셨네.
경장, 율장, 논장 이 삼장을 다 꿰뚫으시고
마조(⾺祖) 이래 역대 조사들 공안을 단박에 부셔버리고
“마음이 곧 부처다”는 한 깨달음만을 꺼내어
조계 보조의 선교일여(禪敎⼀如)를 한 맥으로 이어
한국불교의 대동맥을 지금까지 박동케 하셨으니 고산 대선사이시다.
아아 무엇이 남아서 아직껏 우리 가슴이 이리 두근거리는 것일까?
일생을 다하여 일체의 것을 버리고, 버리고,
버렸다는 생각마저 버리고, 놓아버리고 놓아버리고
놓았다는 생각마저 놓아버리고, 이 생각 저 생각
끝없이 일어나는 뇌(腦)의 음모를 정지시키고,
이도 저도 아닌 마음의 영도(零度)에 바늘이 멈춘
무게 없는 배, 밑바닥이 없는 돌배(⽯⾈)에 앉아
가없는 허공 싣고 고산 대선사, 마침내 홀연히 강을 건너가셨네.
아아 강기슭 이쪽, 우리 몸을 뚫고 가는 시간의 화살이
2021년 삼월 스무 이틀을 가리킬 때, 받은 몸 돌려주고,
태어나지 않아 죽지도 않는 저 영원한 바깥으로 나가셨네.
깨달아 우뚝 치솟은 밝은 산 고산 큰스님은 일체 흔적을 지우셨으나
잠시 앉았다 가신 쌍계총림의 나무가지는 아직도 흔들리고 있구나.
살아 있는 마지막 날까지 살아서 괴로운 뭍사람들에 손수 다가와
당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그 누구를 가리지 않고
전법교화의 걸음을 멈추지 않으셨으니 스님의
바스락거리는 옷자락 소리, 인자한 음성과 기침소리,
지금도 다가오는 듯 한 당신의 인기척이 어찌 그립지 않을 수 있으랴.
당신의 귀를 지나갔던 지리산 쌍계사의 세찬물소리여
비록소리는 물을 떠났으나 누군가의 몫인 양 여울에 남겨주신
그 물로 달인 죽로차 한 잔,달빛 묻은 문고리 당겨 오늘밤
스님 방에 넣어드리고 싶네.
2021년 9월 황지우, 감히 쓰다


국가지정문화유산 | 보물
하동쌍계사 승탑
쌍계사 북쪽 불일폭포 방향으로 가다가 좌측봉우리 능선에 위치한 이 탑은 진감선사(眞鑑禪師)의 승탑으로, 사리를 모시는 탑신을 중심으로 아래는 받침부분인 기단(基壇)이고 위는 머리장식 부분입니다. 기단은 엎어놓은 연꽃무늬가 새겨진 아래 받침돌 위에 8각의 가운데 받침돌을 올렸습니다. 그 위로 다시 솟은 연꽃무늬를 새긴 윗받침돌을 올려 대칭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기단 위에는 두꺼운 괴임돌이 삽입되어 눈에 띄는데, 괴임돌에는 구름무늬가 가득 새겨져 있습니다. 탑신의 몸돌은 밋밋한 8각으로 지붕은 넓고 밑면에는 서까래인 듯 보이는 받침을 두고 있습니다. 추녀는 끝에서 위로 들려져 있고 여덟 곳의 귀퉁이 끝에는 아름다운 꽃조각이 앙증맞게 솟아있습니다. 머리장식으로는 보개(寶蓋:지붕모양의 장식)가 있고, 짧은 기둥 위로 타원형의 돌이 솟아 있습니다. 모든 부재를 8각형으로 조성한 탑으로 각 부의 비례가 같지 않고 조각이 생략되거나 형식화되는 과정을 보이고 있습니다. 탑비와 함께 9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시·도지정문화유산 | 경상남도기념물
쌍계사 차나무 시배지(雙磎寺 茶樹 始培地)
우리나라 차 문화는 지리산 자락에서 시작됐습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중국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대렴 공이 828(흥덕왕 3)년에 차나무 씨앗을 가지고 돌아오자 왕이 지리산에 심게 했고, 그 뒤 830년부터 진감선사가 이곳 차나무 시배지 차를 쌍계사 주변에 번식시켰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곳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차를 재배한 차나무 시배지입니다. 이곳 시배지에서 생산된 차는(일명 죽로차. 작설차. 시배지차) 우리나라 최고의 차라는 명성을 얻어,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는 이 시배지차를 왕실에 올렸습니다. 조선 후기 문신이자 서화가였던 추사 김정희는 시배지 차를 중국 최고의 차인 승설차보다 낫다고 평했고, 우리나라 다도(차를 달여 마시는 예법)를 바로 세워 다성(茶聖)이라 부르는 초의 선사도 시배지 차의 풍모와 자태가 신선 같고 고결하다고 격찬했습니다. 이러한 명성을 떨치던 시배지 차도 일제식민지를 거치면서 사라지기 시작했던 것을 1975년 고산 화상이 쌍계사 주지로 부임하여 화개면 운수리 산127번지와 산127-4번지(쌍계사소유) 일대가 차나무 시배지임을 아시고 복원하여 시배지 차나무 종자를 다시 화개면 일대에 번식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1981년에 한국차인연합회에서 차의 날을 선포하며 차 시배 추원비를 세워 이곳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차나무 밭임을 알렸고, 1992년에는 하동군과 하동차인회에서 차나무 시배지 표지석을, 쌍계사를 창건하고 차 문화를 널리 보급한 진감선사의 공을 기려 2005년에는 진감선사 차시배 추앙비를 세웠습니다. 이에 고산 화상께서는 “사단법인 진감초의 다맥 한국선다회”를 창립하시고, 매년 5월초에 차문화대축전을 열고 있습니다.
이 축전 기간 중에 진감, 초의, 만허선사의 다맥을 복원하여 다맥 전수식을 한국선다회 주관으로 열고 있으며, 차의 날인 5월 25일을 즈음해서는 화개 일대에서 하동 야생차문화축제가 열립니다.
불교성지순례 제132회 쌍계사 경남 하동ㅣ지리산ㅣ대한불교조계종ㅣ전통사찰ㅣ삼신산 쌍계사
https://youtu.be/CqxjA0wHbaw?si=KmZIdgThyOayfq3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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