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 향기 머무는 창가
불교 신앙의 핵심 본문

1. 불교의 다양함
불교의 특징은 그 단계의 다양함에 있다.
원래 불교의 신앙은 석가모니부처님의 가르침이 핵심이다.
즉 세상을 여여하게 보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불교의 가르침의 핵심은 '믿는 것' 이 아니라 '배우는 것'이다.
쉽게 말하자면 학교에서 수학을 배울 때에 1+1=2 가 되는 것을 '믿으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라'로 가르치고, 학생은 답을 '암기하는 것' 이 아니라 답을 '풀이 하는 것' 이 된다.
불교는 절대로 믿음을 강요하지 않는다.
이해가 되도록 차근 차근히 하나 하나 합리적으로 이 세상을 여여하게 보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
그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 더 이상 이 세상의 일에 마음을 상하거나 불행을 가지지 않도록,
즉 고생을 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정신 수준은 다양하여, 아무리 이해를 하도록 가르쳐도 답을 암기해야만 하는 학생이 있듯이,
불교에서도 그러한 신앙의 수준의 다름으로 인해, 불교의 가르침도 불자들의 정신 수준에 맞게 다양하게 되어 버렸다.
불교 신도들의 정신수준의 정도를 근기라고 한다.
상근기, 중근기, 하근기 란 단어를 사용하는데, 상근기는 매우 직관력이 좋아서 반야류의 경전을 금방 이해하는 사람이다.
이들의 마음은 때가 없어서 있는 그대로 이 세상을 여여하게 받아 들이게 되는 사람들이다.
하근기의 사람들은 마음이 상처를 많이 받아서, 무슨 말을 해도 그 진정한 의미를 삐딱하게 받아 들이거나,
이 세상의 일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지 못하고, 귀신이나 미신등, 환상적인 요소를 많이 보는 사람들이다.
이런 여러 가지 정신적 수준에 따라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전달하려 하다보니
불교에서는 몇가지의 가르침의 수준별로 다양한 불교가 탄생하게 되었다.
간단히 그 분류를 하면 다음과 같다.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그대로 전달하는 단계.
관세음보살님에게 참회와 사랑을 바라는 단계.
부적을 받고 점을 보는 단계
이를 그 수준별로 설명을 하도록 한다.
2.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전달 받는 단계
이 가르침의 단계는 매우 높은 수준의 정신단계를 요구하는 것으로서 주로 스님들에게 해당되는 가르침이다.
스님들은 자신의 마음을 참선과 수행을 통해 매우 높은 깨달음의 수준으로 높이게 되는데,
이 때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배우고 실천한다.
대표적 가르침으로서는 유명한 선사들의 가르침을 들 수가 있다.
선사들의 가르침은 모두 상근기에 해당하는 가르침으로서 중근기나 하근기의 사람들에겐 수수께끼 일 수가 있다.
"부처님을 보면 부처님을 죽여라." 등의 말은 상근기의 사람에겐 그 뜻이 이해가 되나 하근기의 사람에겐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스님들은 겨울 3개월 동안은 동안거(冬安居)라고 하여 선방에서 3 개월간 열심히 참선하고 수행한다.
여름에는 또한 하안거(夏安居)라고 하여, 또 3 개월간 참선하는데 , 동안거와 하안거 시간에는 외부와의 접촉이 금지 되어 있다.
이 동안거와 하안거 사이의 3개월은 전국의 각 사찰을 돌아다니며 다른 스님과의 대화와 만남을 하는 만행(卍行)을 하게 된다.
이러한 스님들이 배우는 내용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선방에서 많이 인용되는 것이 중국의 스님들의 어록인데 달마대사의 어록도 그 중 하나이다.
하지만 기본적인 가르침은 물론 부처님의 가르침 그 자체이다.
3. 관세음 보살을 믿는 단계
보살이란 깨달음의 단계가 해탈, 즉 윤회의 굴레를 벗어난 존재가 아니라, 인간도 아니고 천상의 존재도 아닌 어떤 영적인 존재를 말한다.
불교에서는 인간세계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삼천대천의 세계(삼천대천이란 소천이 천개 모이면 중천, 중천이 천개 모이면 대천, 대천이 천개 모인 이 우주를 삼천대천이라고 부른다.
무수하게 많은 하늘나라가 있고, 각 하늘나라에 천주님들이 계신다)를 이야기 하므로, 인간이 아닌 어떤 영적인 존재도 당연히 존재한다.
불교중에서 관세음 보살을 믿는 단계는 대부분의 불교에서 믿는 단계이다.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때가 묻지 않은 아주 깨끗한 마음이라면, 석가모니 부처님이 말씀이 그대로 직관으로 이해가 될지 모르지만,
보통 사람들은 세상을 살면서 많은 상처를 입고, 마음이 다친 상태이다.
이러한 상처받은 마음의 단계에서 직접 부처님의 말씀을 들려 주어 보아야, 마이동풍, 우이독경이 된다.
그래서 아직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지 못한 사람에게는 관세음 보살님이라는 존재에게 의탁하여 자신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고,
자신을 사랑하여 주도록 빌 게 되는 그러한 단계가 관세음 보살님에게 의지하는 단계이다.
관세음 보살님에 관한 경전은 천수경이다.
관세음 보살님은 천개의 눈을 가지고 천개의 손을 가져서 이 세상의 모든 고통을 없애주려는 분이시다.
관세음 보살님을 믿고 매일 108 배를 하며 참회진언을 하여 천수경을 독송하면,
관세음 보살님에 대한 의지가 확고하게 될 때 , 관세음 보살님의 사랑을 몸으로 체험하게 된다.
이를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력이라고 하며, 죄를 사해주고( 참회 ),
그리고 그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어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도록 이끄시는 분이시다.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이란 분이 계신데, 바로 기독교의 예수님의 역할과 불교의 관세음 보살님의 역할이 거의 같다.
불교의 시각으로 본다면 예수보살님이신 셈이다.
불교에서는 예수님도 관세음 보살님과 마찬가지로 예수보살님으로 모실 수 있는 것이다.
단, 불교와 기독교의 다른 점은, 윤회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점이다.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을 믿으면 그대로 천당에 간다고 하지만,
불교에서는 관세음 보살님을 믿고 따르고 영접하여 관세음 보살님이란 영적 존재의 인도를 받으면,
적어도 지옥으로 떨어지지 않은다는 보장은 받게 된다. 그러나 천당은 가지 않는다.
천상에 도착하려면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워야 한다.
즉 집착을 떨쳐 버리는 가르침이다.
왜 집착을 떨어 버려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불교와 윤회'라는 글을 읽어 보면 이해하게 된다.
관세음 보살님에게 의존하고 관세음 보살님의 가피력으로 자신이 보호를 받기 시작하면
그 다음에 그 사람은 마음의 상처를 조금씩 조금씩 아물 게 할 수 있다.
그러면서 조금씩 지혜의 길로 한 발자국씩 전진해 나갈 수가 있게 된다.
따라서 불교를 맨 처음 접하는 사람이 배우는 것이 천수경 독송인 것은 그러한 이유이다.
관세음 보살님의 가피력을 믿고, 의지하고, 그리고 관세음 보살님의 은혜를 받도록 열심히 기도하면
자신의 마음을 짓누르던 여러 가지 불행한 마음, 예를 들면 과거에 대한 후회, 현재의 불안, 미래에 대한 공포등이 해소되면서
하근기에서 중근기로, 그리고 상근기로 발전하도록 관세음 보살님이 여러 가지로 도와 주시게 된다.
관세음 보살님과 같이 영적인 존재로서 문수보살님이 계시다.
문수보살님은 관세음 보살님의 은혜를 받아 마음이 사랑을 차게 되고 안정된 사람이 지혜,
즉 반야바라밀을 구하기 위한 길을 걸을 때 그 사람에게 지혜의 빛을 주시는 영적 존재이시다.
관세음 보살님이 가슴의 영적 존재라면 문수보살님은 머리의 영적존재이시다.
이 문수보살님의 은혜로서는 구도의 길을 걷는 사람에게 가르침을 전해주는 여러 가지 인연이 나타나게 만드시는 영적 존재이시다.
불교를 접하고 관세음보살님에게 기도드리고, 지혜를 얻기 위한 길을 걷게 될 때
그대는 자기도 모르게 어디에선가 자기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바로 문수보살님의 덕택이다.
관세음 보살님이나 문수보살님은 충분히 해탈하여 천상에 머무를 수 있는 분이시나,
지구상에 머물러서 인간들을 도와주시고, 나중에 천상으로 해탈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시는 인간의 구세주이신 셈이다.
참고로 지구가 아닌 지옥에서 영혼을 도와 주시는 지장보살님이 또 계시기도 한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영적 존재들이 많다.
그 이유는 불교를 공부하다보면 인간 뿐 아니라, 짐승의 세계 , 영혼의 세계등 많은 세계들이
모두 불교의 법에 따르는 세계로 가르치고 있으므로 인간과 짐승, 그리고 영적 존재가 함께 어우러져 있는 세상으로 보는 관점이 있다.
관세음 보살님에게 매일 밤 108 배를 하면서 기도를 드릴 때 나타나는 은혜, 즉 가피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관세음 보살님에게 영적으로 도움을 받을 때의 환희심은 관세음 보살님을 영접하는 마음에 나타나게 된다.
불교에 처음 접하는 사람은 항상 관세음 기도를 드리고, 가난, 불행, 불만, 불안, 공포등의 상처받은 마음을 우선 붕대로 감아,
상처가 커지는 것을 일단 막고, 다음 단계의 상근기를 향해서 정진하는 준비를 가져야 한다.
상근기에서 공부를 하면 마음에 걸리었던 모든 상처들이 아물 게 되어 더 이상 괴로운 것이 없게 된다.
관세음 보살님은 사람이 지은 죄를 사해주시고, 참회의 기도를 들어 주시며,
아무리 악업을 저질렀다고 하더라도, 그에게 불심이 있음을 아시고 도와 주시는 분이다.
항상 관세음 기도를 하면 틀림없는 그 은혜를 내리시는 분이시다.
4. 점과 부적을 믿는 사람들
아주 하근기의 사람들로서, 자신이 뭘 잘못하고 있는 것도 몰라서, 참회하는 것을 잘 모르고,
단지 기복을 위해 절을 들락거리는 사람들에게, 부적을 제공하기도 하고 점을 쳐주는 스님도 있기는 한다.
물론 이들에게 점을 쳐주고 부적을 제공하는 스님들은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고 계신다.
하나의 방편으로 그러하신 것이지, 그것이 정확한 가르침이 아니란 것을 아시는 것이다.
언젠가 그들도 자신들의 죄를 참회하고 관세음 보살님에게 빌어 자신의 마음이 잘못을 고백하고,
진리에의 구도의 길을 걷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점을 쳐 주기도 하고 부적을 만들어 주기도 하는 것이다.
자신이 지은 죄를 알아내고 그리고 고백하고, 참회하는 일은 중근기의 사람에게 보여지는 행동이다.
대개 하근기의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조차 모른다.
단지 그들은 자신들의 자식들이 대학에 붙기를 바라고, 그리고, 자신들이 하는 사업에서 돈을 벌기를 바란다.
그러면서 그대로 자신이 살던 생활을 고집하는 사람들이다.
관세음 보살님에게 참회하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여 살라고 하여도 이해하지 못하고 관세음 보살님에게 복만을 비는 수가 있다.
이러한 신앙을 기복신앙이라고 부르는데, 불교 신자의 분들중 기복신앙을 위해 절을 찾는 신도들이 있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불교에서만이 있는 현상이 아니라, 다른 종교에서도 기복신앙이 많다고 볼 수 있다.
대학입시때가 되면 모든 종교단체에서 수험생을 위한 새벽기도회를 여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불교 뿐 아니라, 개신교, 천주교 등등 모든 종교에서 보여지는 기복신앙의 형태는 아마도 가장 하근기 사람에게 해당하는 종교일 것이다.
5. 산신령, 삼성각
절에 가보면 삼성각등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한국의 고유한 민속종교로서 샤마니즘, 즉 모든 자연에 혼령이 깃들어 있다는 종교이다.
한국에 들어온 불교는 이러한 한국 고유의 민속종교와 결합하여 절 속에 원래 한국인의 전통종교도 함께 가지고 있다.
불교는 모든 종교를 포용하며 최고의 목표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깨달음의 가르침을 전파하여
모든 사람이 천상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종교이다.
따라서 샤마니즘을 믿는다고 그 사람을 배척하지를 않는다.
그렇다고 그 사람에게 그 종교가 나쁘다고 다그쳐 못 믿게 하지도 않는다.
사람은 윤회를 통해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자신의 업에 의해 그러한 환경에 태어났기에
하근기로 태어난 사람은 그런 환경에서 최선으로 살도록 도와주는 일을 불교가 한다.
산신령, 삼성각등을 믿고서 절에 들어와서 조금이라도 관세음 보살님의 은혜를 입거나,
또는 그 후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할 정도가 된다면 얼마나 그 사람에게 복이 되는 일인가 ?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는 일은 인간의 태어나고, 병들고, 늙고 , 죽는 고통을 또 다시 반복하는 일을 벗어나는 일이다.
부자는 부자로서의 고민이 있고, 가난한 자는 가난한 자의 고통이 있다.
병든 자는 병든자의 고통이 있는데, 이러한 고통을 영원히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길 뿐이다.
6. 불교 가르침의 핵심
불교의 가르침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원래 불교의 가르침의 핵심은 뭐니 뭐니해도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 핵심이다.
그리고 그 가르침의 핵심은 바로 이 세상의 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의 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여여하게 본다고 하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을 부처(Buhda)라고 부른다.
불교 가르침의 핵심은 부처가 되는 것이고,
부처가 된다는 것은 자신이 현재 보고 있는 것이 실재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고,
그 깨달음을 잘 보존하여 항상 여여하게 볼 수 있도록 수행하는 것이다.
부처와 깨달음에 대한 여러 가지 다음의 글을 보면 불교의 핵심이 나타난다.
그러나 이러한 불교의 핵심사상을 이해하고 그 지혜, 즉 반야바라밀을 얻으려면, 중근기나 하근기로는 곤란하고,
일단 자신을 관세음 보살님에게 맡기고 관세음 보살님의 은혜를 받도록 열심히 기도하는 것이,
중근기, 하근기의 사람들이 해야할 수행이다.
그럼 부처님과 깨달음에 대한 글을 보고 이 단원을 끝내자.
모든 존재를 사실적으로 아는 이를 부처라 하고,
모든 존재의 있는 그대로의 상황을 터득하였기 때문에 부처라 하며,
사실과 같이 모든 존재를 알기 때문에 부처라 한다.(마하반야파라밀경)
일체 모든 지혜가 법에 걸림이 없으면 여래라고 한다.( 대반열반경)
모든 법에 대하여 알고 보는 것이 걸림이 없으므로 부처라 하고
말하는 것이 두가지가 없으므로 여래라 하며 번뇌를 끊었으므로 아라한이라고 한다.(대반열반경)
반야는 분별적 지식이 아니 때문에 알지 않음으로서 그것을 알게 된다.
만약 자기가 본 것만으로 본다고 하면, 보지 못하는 것이 있게 되나
보았다는 생각이 없는 것으로 본다고 하면, 보지 못하는 것이 없게 된다.( 달마어록, 2입4행론에서 )
7. 불교정신의 특징
다른 여러 종교와 비교하여 불교가 지니는 중요한 특징은 다음과 같다.
▲ 신(神)을 내세우지 않는다.
불타가 후에 이상화(理想化)되고 확대되어 절대(絶對),무한(無限) 및 그 밖의 성격이 부여되고,
각성과 구제의 근거가 되고 있으나 창조자,정복자와 같은 자세는 취하지 않는다.
▲ ‘지혜(智慧)’와 ‘자비(慈悲)’로 대표된다.
▲ 자비는 무한이며 무상(無償)의 애정이라 할 수 있어, 증오(憎惡)나 원한을 전혀 가지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일반적으로 광신(狂信)을 배척하고 관용(寬容)인 동시에 일체의 평등을 관철하고자 한다.
▲ 지혜의 내용은 여러 가지로 발전하는데, 일체를 종(縱)으로 절단하는 시간적 원리인 ‘무상(無常)’과
일체를 횡(橫)으로 연결하는 공간적 원리인 ‘연기(緣起)’가 중심에 있어, 이것은 후에 ‘공(空)’으로 표현된다.
▲ 현실을 직시(直視)하는 경향이 강하다.
▲ 모든 일에 집착과 구애를 갖지 않는 실천만이 강조되고 있다.
▲ 조용하고 편안하며 흔들리지 않는 각성(覺性 : 解脫)을 이상의 경지(境地)로 삼아 이를 열반(涅槃)이라 한다.
그 교의(敎義)는 석가의 정각(正覺)에 기초를 둔다.
그러나 팔만사천의 법문(法門)이라 일컫듯이 오랜 역사 동안에 교의의 내용은 여러 형태로 갈라져 매우 복잡한 다양성을 띠게 되었다.
부처님도 본래는 석가모니부처님만을 가리켰으나 그의 입적(入寂) 후 불신(佛身)에 대한 논의가 일어나
이신(二身)삼신(三身) 등에 대한 논의와 과거불, 미래불,
또는 타방세계(他方世界)의 불, 보살(菩薩) 등의 설이 나와 다신교적으로 되었다.
불교를 다음과 같이 크게 두가지 측면에서 기독교와 비교하기도 한다.
서양 세계관의 중심에 있는 기독교는 창조에서 종말로 이어지는 직선적 세계관이라면,
불교는 육도윤회로 대표되며 시작과 끝이 없는 순환론적 세계관으로 구원의 가능성을 항시 열어두고 있다.
또한 기독교는 오직 예수에 의해서만 구원이 가능한 타력(他力) 종교라면,
불교는 자기 자신의 깨우침에서 구원이라는 해탈을 얻을 수 있는 자력(自力) 종교이다.
[출처] 불교 신앙의 핵심 |작성자 목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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